출 14: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홍해 바다 앞에 멈춘다.
그들은 궁금하였다.
"왜 오던 길로 되돌아 간단 말인가?
저기는. 바다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대체 왜 저기로 간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군말없이. 모세를 따라갔다.
왜냐하면. 모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양반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지. 뭐 쓸 데 없이. 이 짓을 꾸미고 있게냐?"는 생각/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근데 그때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왜냐면.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기 시작하였다.
군마를 타고 달려오는. 애굽 사람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데.
우리가 저 사람들의 칼과 창을. 대체 어떻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부터 모세를 원망하고. 그에게 쓴 소리와 험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굽에 묘 자리가 부족해서. 우리를 여기 끌어냈냐?"
"우리가 이미 애굽에 있을 때 말하지 않았더냐.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도록 가만 냅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모세는. 이 얘기를 듣고. 되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아니.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구해줬더니. 이제 보따리도 내 놓으라는 건가?
애굽을 떠나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따라 오지 않으면 되지.
따라 올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나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시비를 거는 거지?"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게는. 하나님께도 속상하고. 원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 대체 왜 가던 길을 되돌아가라?"고 하시고.
"왜 여기 바다 앞에 멈춰 서가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멈춰 계신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며. 참 인상적인 것은.
모세가.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아니한가?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고.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하나님이 왜 되돌아가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내가 바로와 그의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말씀하긴 하셨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을 말씀해 주신 적은 없으시다.
그런 측면에서. 모세의 마음 속에도. 온통 궁금증/물음 투성이다.
"하나님. 대체 왜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내신 것이고.
하나님.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상황을 맞게 하신 것인지?
하나님.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시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 걸까?"
하지만. 모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나님께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다리고. 침묵하기'를 선택하였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일하심을 드러내시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하셨으니.
주께서. 당신의 열심을 따라. 당신의 선하심을 따라.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고 나타낼 것을.
모세는 믿고 확신한 것이다.
그렇기에. 모세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이와 같이 고백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주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13-14절)"
어떤 측면에선. 이것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어떤 측면에서. 이것은. 모세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도> 이런 상황 속에서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 주를 바라보며.
오늘 우리의 시선을 주께 고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오늘 내 삶의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된다.
실로. 오늘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며.
오늘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가던 길을 되돌아 가며. 뒤로 물러서고. 후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앞은 막혀 있고. 뒤에서는. 누군가 우리를 쫓아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좌절하고 낙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좌절하고 탄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며.
그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며.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고. 주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도의 특권이자 권리이며. 의무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섰으면 좋겠다.
"주님이. <어떻게> 일할 것인가?"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주님이. <어떻게> 당신의 손을 펴고.
주님이. <어떻게> 당신의 능력을 보일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어떻게" 방법에만 몰두하고. 방법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하실 일. 주님의 소관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며.
주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신 앞에 겸손히 엎드리길 기도한다.
오늘 주께서.
우리 인생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주실 것을 기다리며.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다.
(feat.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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