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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2024.10.03(목) 막 11:15-19
막 11:15-19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무렵.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환전상들을 배치하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성전 안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을 통해. 소소한 수익과. 자신들의 유익을 취하려 했었다.
명분은 좋았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희생 제물을 가져오기 힘드니까.
여기서 손 쉽게. 편리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며.
성전세를 내려면. 돈을 바꾸고. 환전해야 하는데.
그것을 손 쉽게.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의 야망이 너무 컸다.
그들은 막대한 환치기를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의 세를 넓히려 하였으며.
혹시라도 어떤 사람이. 제사에 쓸 희생 제물을 직접 가지고 온 일이 있으면.
"이것은 부적합하다"고 하면서.
강제적으로/고의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곤 했었다.
그러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곳에서 희생 제물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근데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장사를 하려면.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이방인의 뜰을 내어줬다.
이방인의 뜰은. 말 그대로. 이방인들이 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는 곳인데.
하나님의 전이 훼파되고. 무너지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사 56:6)" 하였고.
"내가 그들을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이)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사 56:7)"하였고.
"(내가) 그들이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기꺼이 받을 것이며.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라(사 56:7)" 하였는데.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그것을 짓밟고. 황폐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 입장에선. 뚜껑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거룩한 분노였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었다.
주께서 원하신 것은. 이방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주를 예배하고 주를 만나길 바라신 것인데.
여호와의 전을 황폐케 하고.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 버리니.
예수님 입장에선 판을 뒤집어 버리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그런 예수님이.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입장에선. 눈엣가시/꼴보기 싫은 사람이었다.
"저 새끼를 어떻게 하면 죽여버릴 수 있을까" 싶었고.
사람들을 모아서 회동하고. 그를 없앨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예수를 저대로 놓아뒀다가는. 그들이 큰 화를 당하고. 위협을 당할까봐.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다.
말씀을 보며.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지.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떠할까?
주님은. 당신의 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삼으시고.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주를 예배하고. 주를 만나길 원하시는데.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중세 시대. 면벌부를 발급하며.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루터가 일침을 가하며. 종교 개혁을 도모하였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가고 있을까?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주를 예배하고. 주를 기뻐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곳을 장사하는 곳으로 삼아.
주의 전을 더럽히고. 어지럽게 하고 있을까.
일부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
"교회가 탈세의 온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데.
그 얘기가. 마냥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실제로 교회에 헌금을 하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는데.
이것이 얼마가 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조작하고. 위조하는 때도 있나 보다.
교회기에/성도들이기에. 믿고 맡겼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기윤실이나 목회개혁 실천연대 같은 곳에서는.
교회 재정 사용을.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하며.
헌금의 입출납을. 복식부기로 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의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재정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거짓에 물들기도 하는 것 같다.
내부 거래를 하고. 내부에서 입막음을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교회가. 어찌 욕을 먹을 수 없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한 사람이/한 교회가 실수한 것이지만.
우리는 함께 욕을 먹고. 함께 꾸지람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으며.
오늘날 한국 교회도. 그와 같은 모습/그와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어떤 곳으로 삼고 있는가.
오늘 우리 교회의. 본 모습과 역할은 무엇인가.
혹시 오늘 우리 가운데.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오염된 것은 없는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따라서.
교회를.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의 문턱과 울타리를 높게 세워서.
우리만의 도성. 우리만의 그라운드로 삼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탐욕과 거짓의 옷이 벗겨지고.
주를 기뻐하며. 주를 즐거워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가. 정치꾼의 소굴. 장사치의 소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이곳에서. 주를 만나고. 주를 기뻐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그 수가. 가득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자랑 할 것이.
교회의 수나. 재정의 많음이나.
교회의 역사나. 교회의 무궁한 전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정결함과 주를 사모하는 열심과.
거룩함과. 주를 향한 진실함이.
우리의 열매가 되고.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더 전념하고. 더 기뻐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 찬양을 부른다.
"주를 위한 이 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에.
그가 찾는 이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시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
내가 그 사람 되길. 간절히 주께 예배하네.
주 은혜로. 이 곳에 서 있네. 주 임재에 엎드려 절하네.
그 어느 곳도. 난 필요 없네. 주님만 경배해.
주 은혜로. 이 곳에 서 있네. 주 임재에 엎드려 절하네.
그 어느 것도. 난 필요 없네. 주님만 경배해"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를 향한 예배자. 진실한 공동체. 참된 주의 자녀되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를 위한 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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