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을 보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오히려 반대 아닐까??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닐텐데'
어떻게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드는 걸까?'
선뜻 이해 되지 않고. 오히려 물음만 더해질 뿐이다.
빅터 프랭클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수용소에 있던 사람 중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나에게도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면서 겪는 고통이.
자살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p.48)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살아날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 때문일까?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는 말 속에서.
그분들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왜 힘들여서. 죽음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지슈.
'이미' 우린 죽은 목숨인데.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고. '이미' 우리에겐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이 눈 앞에 있는데.
뭣한다고. 그런 고민을 하고. 쓰잘데기 없는 일을 하슈. '이미' 우린 죽은 목숨인데.."
사실. 이 말이 섬뜩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말도. 그들에겐 '사치'였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래야 이해할 수 없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괜시리 마음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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