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1:4-17

하나님은.
"은총"의 막대기와. "연합"이라는 이름의 막대기로.
양떼(우리)를 돌보셨다.

본래. 그들을 돌봐야 할 목자(이스라엘 지도자)가 있었지만.
그들이 직무유기하며. 양들을 내버려 두었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 것이다.

그 결과. 병들어 죽어가던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되었고.
살 맛 나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패역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 은총의 선물이. 자기 덕분인 줄 착각하고 있다.
목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잊어버리고.
허랑방탕하게 지내더니.
이제와서는. 그러고도.
"내가 부자가 되었다"고 희희덕거린다.

이 모습을 지켜 보신. 하나님은.
속이 상할대로 상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해고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돌보는 목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
죽을 놈은 죽고. 망할 놈은 망해라.
그러고도 남는 것들은. 서로 잡아 먹어라"
그러면서. "은총"의 지팡이를 꺾어 버렸다.


그리고. 양떼 주인(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목자의 직무에 상응하는 품삯을 달라고 요청한다.
품삯(돈)에 대한 관심이었다기 보다는.
자신의 사역/돌봄에 대한 수고와 애정을.
알아주기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책정된 돈이 고작. 은 30이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근무하던 시절. 받던 생활비가 하루에 은 40개였는데(느 5:15)"
"노예의 몸값이 고작 은 30개였는데(출 21:32)"
하나님의 은혜와 수고를. 겨우 그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욕적인 언사에. 하나님은 화가 나셨다.
그래서.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리시고선.
"연합"이라는 지팡이 마저도. 꺾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땅에 한 목자를 세우리니.
그는 양을 잃어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으며.
상처받은 양을 고쳐 주지도 않으며.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하며.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을 것이다.
칼이 그의 팔과 오른 눈을 상하게 할 것이니.
팔은 바싹 마르고, 오른 눈은 아주 멀어버릴 것이다."

기껏 밥상을 차려주었더니.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해서.
하나님이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일면.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된다.
사역을 하며. 때때로 마음 상하는 일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돌발행동에. 마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위로를 얻는다.

또 다른 일면에서는. 나도 이스라엘 공동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만홀히 여기며.
하나님의 수고와 사랑의 섬김을.
응당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경각심 또한 갖게 된다.

은 30으로. 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열정 페이 정도만 주면서.
무리한 일을 요구한 것은 아닐까?


버스 떠나고 난 다음에 손 흔들면.
아무 소용 없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오늘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또 우리를. 헤아리며 사랑해 주는 누군가의 섬김에.
진정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들의 수고를 헤아려 주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진짜 살 맛 나는 세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나부터.
그 은혜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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