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7:4-45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서 돌아왔다.
그 수는. 42360명이었다(느 7:66).
엄~~청. 많은 사람이라 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은 수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벽을 완성하고 보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성읍은 크고 넓으나.
사람은 얼마되지 않았고. 제대로 지은 집도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느 7:4).
실제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고향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각자 도생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느 7:73).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가슴이 아팠다.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으려 한다.
예루살렘 성벽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며.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작은 힘이라 하더라도. 그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결집하기 위함이다.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오늘 우리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예배당은 크고 넓으나.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고.
텅빈 예배당은. 더욱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비대면 예배로 드려지는. 온라인 공간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지만. 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함께 모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저마다 자기 고향에서. 자기 집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빈자리가.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사랑하는 우리 친구들은 어디 있을까?" 그리움만 더해져 간다.
그래서. 친구들의 이름을 꺼내어 불러본다.
전북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전주교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전주대/비전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군산대/호원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원광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우석대 친구들이 몇 명이요.
전주북문교회 친구들이 몇 명이요.
아마. 느헤미야도 그러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이름을 정리하며. 단지. 행정적인 일처리에 목적을 두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기도였고. 이것이 그의 갈망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도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우리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그 날을 기다린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마주할 그 날을 기다린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제의 예배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비록. 모두/전부는 아니었지만.
줌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하던. 그 얼굴.
그렇게.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라는 찬양을 부를 때.
순간. 코 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랑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계속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의 처지를 살피고. 도와주십시오.
지금은 비록. 우리의 몸이 흩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흩어지지 않게 하여주십시오.
우리가 다시금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시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며. 사모하게 하여 주십시오.
왜냐하면. 지금도. not bad. 나쁘진 않지만.
그게. 더 좋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feat.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서(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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