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2:31-51
여름수련회가 시작되었다.
전국 18개 지방회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과 컨셉으로. 수련회를 준비하며.
학생들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내일부터. 경인/경기남 지방에서 말씀을 전하며.
다음주는. 제주지방을 찾아. 학생들과 말씀을 나눌 예정인데.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한 편으론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왜냐하면.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과 소명을 발견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도.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실로. 다윗의 인생을 돌아볼 때.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인생의 질고와 어려움이 있었던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욕하고 떠났을 것이며.
만약. 다윗이 그랬다고 한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런 다윗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지나온 세월/걸림돌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되었다.
사건을 사건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과 손길'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주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고백한다.
"하늘 위에 주님 밖에. 내가 사모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며. 주님만이 나의 견고한 요새입니다.
주께서 내가 걷는 길을 안전하게 하여 주시고.
주께서 나의 팔을 단련하사. 강한 활을 당길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힘과 담력을 주셨고.
주님으로 인해. 내 영혼이 만족하며.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의 고백이 더욱 힘있게 다가온다.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마냥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무런 의미없이. 그냥 무색무취로 들릴 법한 신앙고백이지만.
우리가 다윗의 삶을 알아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다윗의 신앙 고백이. 더욱 살아있고. 힘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다윗의 신앙 고백은.
죽은 믿음 / 책에서 배운 믿음 /
그저 다른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확인되고 체험된. 진짜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이 있길 소원한다.
실제로. 우리가 그동안 지내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아왔던가.
창조/타락/구속/완성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십계명과 주기도문. 사도신경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형식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와서. 이제는 아무런 감흥이 없기도 하고.
때로는.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딴나라 이야기 같아서.
그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욥의 하나님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주님에 대해. 귀로만 들어왔다면.
이제는. 눈으로 직접 주님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며.
이전에는. 도무지 해석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던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되고. 발견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필요하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백이.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의 삶을 통해. 그 하나님이 고백되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사도 요한의 종말론적 고백이.
오늘 우리의 입술을 통해. 동일하게 고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성경에 기록된. 그 하나님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이야기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땅을 지으시고. 다스리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고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말로 전할 수 있으며.
당신의 그 놀라우신 사랑을. 우리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부스러기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나눌 뿐이며.
주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을. 다 표현하기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와 논리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능함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느낍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듣지 못하는 자를 듣게 하시며.
보지 못하던 자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당신의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만져 주시옵소서.
우리가 책으로 보아왔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여주시고.
욥의 고백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고.
도마의 고백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이들을 지켜주시고.
그들의 섬김과 사랑이. 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주시고.
우리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싸우시며.
주께서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지.
우리가 함께 목도하며. 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이. 그런 하루 되길 소원하며.
우리의 매일이. 주님의 은혜로 물들고. 깊어져가도록.
주님. 붙들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간사들과. 학생들을 주께 의탁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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