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3:8-39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다윗이 거느린 이스라엘의 용사들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삶을 드린 자들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일거수 일투족. 그들의 삶을 다 기록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또 진실하게 살았는지를.
함께 기억하고. 함께 노래하기 위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어떻게 기억될까?"
"my life is my message 라고 했건만.
나의 삶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기억될까?"

어쩌면.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인간이기에.
당당하게. 내 삶을 드러내기 보다는.
감추고 숨기고 싶은 일이. 훨씬 많을 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늘 부끄럽고. 민망하기 일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과 나만 아는 죄가 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과 나만 아는. 허물/연약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생각은 다르신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인생이 볼품없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한없이 기쁘게 여기시며.
사람들 앞에. 당당히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기 원하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들춰내시면서.
우리를 비난하고 정죄하기 보다.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추시며.
우리를 자랑하고. 높이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모습 또한 그렇다.

실제로. 우리가 지난 시간.
사무엘서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느꼈던가?
참 많은 것이. 얽히고 설켜 있어서.
하나의 잣대로. 사람들의 모습을 평가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았는가?

그 사람의. 공/업적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의. 과/허물과 연약함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들의 허물은 감추시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는지.
오직. 그 사실만 보이기 원하신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서.
"그 사람. 이러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소?"라고.
우리를 정죄하고. 비난할 때.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하시며.
당당하게. 우리를 커버하고. 우리의 잘못을 감춰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된.
오늘 우리의 삶이다.

어떻게든. 점수를 깎기 위해.
매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점수를 주기 위해.
은혜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민망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가 뭐라고. 주께서 나를 이렇게 기억하시며.
내가 뭐라고. 주께서 나를 이렇게 생각하신단 말인가.


그렇기에. 우리 또한. 그 주님의 은혜/사랑에 감사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주님께 나아간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의 향유를 깨뜨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였던 여인처럼.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커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당당히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3사람의 모습이.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1)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가. 블레셋을 피해 도망칠 때.
자신만은 도망치지 않고.
홀로 블레셋 군대와 당당히 맞서 싸웠던 엘르아살(9-10절)

2) 이스라엘 모든 군대가. 블레셋을 보고 도망칠 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위에서.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그들과 맞서싸웠던. 삼마(11-12절)

3) 이집트 사람의. 위풍당당한 모습 앞에 주눅들지 않고.
막대기 하나로. 당당하게 맞서싸웠던 브나야(21절)


어쩌면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거대한 세상 앞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너무 작아 보이고.
때로는 이 싸움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것처럼.
너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과 진리로. '당당하게' 이 땅을 살아가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말씀 위에 '당당하게/굳게' 서는 것을.
주께서 원하시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나와 오늘 우리 공동체가.
믿음의 길을 따랐으면. 좋겠고.
십자가 복음이.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그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고.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과. 참된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면 좋겠다.

그래서. 마지막 날.
주께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계수하실 때.
주께서 우리를 기억하고. 돌봐주시길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삶이. 해같이 빛나길 소망한다.


그래서일까?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환난 가난과 고난. 수고로움 속에도. 성도는 그 믿음을 지켰네.
주를 섬기는 일에. 자신을 다 드리며.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그 길을 걸었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케 되었네.

우리는 무명하나 유명한 자요. 죽음의 위기 속에도 참 생명 가졌고.
근심하나 기뻐하며. 가난하나 다른 이를 부요케하는 자로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불러야 할. 성도의 노래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것이 우리가 고백해야 할. 성도의 고백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주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주목하시니.
오늘 우리도. 그 주님 앞에서.
당당하게/진실하게. 어깨를 쭉~ 펴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길 소원한다.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며.
주께서. 우리의 심령을 더욱 단단하게 하시며.
주께서. 우리의 마음에. 힘과 소망을 더하시며.
주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와 기쁨을 주시길 소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향한 믿음으로.
당당히. 자신있게. 오늘을 살아간다.

 

(feat. 성도의 노래)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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