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1-13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그 머리에. 향유를 붓는다.
매우 귀한 것이다.
그 당시. 노동자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가격이었고.
흔히 구할 수 있는 향유도 아니었다.
근데. 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다니.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일까?
그 여자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는. 우리 주님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 때문이다.
실제로. 요한복음을 보면.
이 사람의 이름을. '마리아'라고 하고 있는데.
그의 오라버니가 누구냐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던. 당신의 친구. '나사로'다.
그러니. 마리아의 마음에.
우리 주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얼마나 컸겠는가?
만약. 우리 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오빠는. 이미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 주님께 감사를 표하고. 답례를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근데.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이.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말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그를 신고하여 잡게 하라(요 11:57)"고 하니.
마리아의 마음이. 매우 번잡하고. 복잡하였을 것이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고?
우리 주님이.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가?
이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데.
나는. 이것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이에. 마리아는.
그동안 고이 간직해 왔던. 나드 옥합 하나를. 주님 앞에 깨뜨린다.
어쩌면. 자기 오빠. 나사로를 향해 준비했던 옥합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훗날. 자기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해 왔던 옥합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준비했던 옥합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마리아가.
훗날. 언젠가. 뜻깊은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이 옥합을. 준비/마련해 왔을 것이고.
마리아가 생각하기를.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고. 그것을 주님께 부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마리아는.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때를 아시고.
그 때를 따라. 자기의 삶을 드렸던 것처럼.
마리아 또한. 자기의 삶을 드리고.
자기의 삶을 깨뜨려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기를 "허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 주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고. 자기의 삶을 허비하셨던 것처럼.
마리아도. 자기의 삶을 허비하고. 자기의 삶을 낭비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늘 기억하고. 기억되는 삶이었다.
때를 따라. 자신의 삶을 드리고. 허비할 줄 알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자기 삶을 드렸으니.
이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는 때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지?" 우리에게 되물어 본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사와 달란트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적절한 때에.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가?
주께서 내게 주신. 시간과 재물.
주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정말 마음껏 아낌없이. 기쁨으로 사용하며.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주님이. 때를 따라.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마음껏 자신의 삶을 나눠주시고 허비하셨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그 주님의 모습을 따라가며. 그 주님의 모습을 본받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자기의 몸을 찢어.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을 향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내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삶이.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주님 앞에서. 당신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이 기억되고. 오늘 우리의 삶이 기억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린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주 경배합니다. 다른 신 아닌. 오직 주께.
나의 모든 우상들. 나의 보좌. 모두 다 내려놓고.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오늘 하루. 우리 주님만 예배하고. 우리 주님만 경배하는.
그런 삶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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