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38-41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다.
아마도 곁에 있던 사람이. 귀신 때문에 고통을 당했나 보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의 이름을 불렀고.
그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그를 치료하고자 하였다.

이에 귀신이 떠나고. 그 사람이 자유케 되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요한이 화를 낸다.
아마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리/특권이라고 생각하였나 보다.

어떤 측면에선. 자격지심도 들었겠지 싶다.
앞에서는. 제자들이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는데(막 9:17-18).
오늘 본문에선.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 귀신을 내어쫓고 사람들을 고쳤으니.
제자들 입장에선. 속이 상하고. 체면이 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요한은. 그 사람에게.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막지 말아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병이 낫게 되었다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지.
그를 욕하고. 저주할 사람이 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금하지 말고. 오히려 칭찬하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작은 예수>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고.
그들의 손을 통해. 예수의 향기가 전해지니.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소중한 모습인가.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과 사도 요한의 모습이 서로 대조되는 것 같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은사와 능력을.
사람들에게 마음껏. 아낌없이 나눠주시는데.
왜 사도 요한은.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였을까?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환대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
왜 사도 요한은. 사람들을.
엄격히 제단하고 판단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교만한 마음과 우쭐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였는데.
네가 어떻게. 지금 여기서 무임승차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고.
"자신의 자리와 자신의 권익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을 배격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려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그들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잃어버린 양들"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나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세우고. 나를 주장하려는 마음들이 나타나고.
그렇게 우리는. 자기의 성을 쌓고. 자기의 울타리를 높여가게 된다.
우리도. "은혜로. 하나님 은혜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자기 만의 성을 쌓고.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높은 울타리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많은 협회와 조직의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처음에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권익을 돕기 위해 생겨난 조직들이.
나중에는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철옹성을 구축해 갈 때.
우리는 얼마나 타락하고. 변질되어 가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 우리는. "사다리 차기 전법"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다리를 놓고. 다른 사람이 건너올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자기만의 성을 쌓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않으며.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물 한 바가지. 생수 한 모금 전해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배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 안에서. 열린 마음과. 수용적인 태도로.
지체들을 섬기고. 사람들을 살피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선을 행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향해서.
그를 시샘하고. 질투하는 삶을 벗어던지면 좋겠고.
그를 칭찬하고. 그를 세워주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오늘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 가운데.
형제 자매의 배부름과 그의 안녕을 보면서.
질투하고. 시샘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벗어던지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형제 자매의 아픔과 연약함을 보면서.
그들에게 물 한 모금 건내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 있다면.
내 삶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
약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본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가꿔가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믿으며.
외로운 사람들 품에 안아줄 수 있도록.
우리 맘 속에 소중한 것을 간직하며 살아요."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배타적인 마음과. 눌린 마음과. 비교하는 마음과. 시샘하는 마음을 벗겨 주시고.
우리 가운데 사랑과 관용과. 자비와 은혜의 마음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하연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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