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10-18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신 뒤.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을 건낸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 우리가 저 요단강을 건너가자”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건너갈 것을 준비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3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실제로 모세가 살아있을 때.
이스라엘 3지파와 모세 사이에서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만약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시면.
우리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 전쟁을 할 때에.
선봉에 서고.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땅을 받고 난 다음에 먹튀 하지 않겠습니다.
땅을 받고 난 다음에. 나 몰라라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이 길을 가고. 내가 먼저 그 길에 서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십시오(민 32장)”라고 하는데.
이 일로 인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쪽에 있는 땅을.먼저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
다른 지파들은 아직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전쟁이 그치지 않은 때에.
이들 지파가. 먼저 약속의 땅을 받고. 그 유업을 얻게 된 것이다.
근데 어제 살펴봤던 것처럼. 모세가 이미 죽게 되었다.
모세가 죽고 난 다음에. 그들은 약속을 파기하고. 뒤로 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세가 있다 하더라도. 그 약속을 뒤집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인간은 ‘배은망덕’한 백성이니까.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른 게 인간의 마음이고.
손바닥 뒤집듯이. 얼마든지 약속을 팽개치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죄악된 마음이다.
근데 오늘 이스라엘의 반응을 보면. 그것과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일삼는다.
‘약속을 잊어버리고. 나 몰라라/배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약속 앞에. 스스로 서고. 하나님 앞에 다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6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가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도 순종하리니.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 1:16-18)”
이 얘기를 들은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든든했을지 모른다.
모세가 떠나고 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내리는 첫번째 명령인데.
만약 이 약속/명령이. 수포로 돌아가고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호수아 리더십에 얼마나 큰 충격/치명타를 입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존중하고. 그를 신뢰하였다.
주께서 그를. 우리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셨음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과 찬양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그 말씀 앞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 공동체가.
감사함과 기쁨으로. 또 담대함과 소망으로 가나안 땅으로 전진해 가는데.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리더십이 주님 앞에서.
당신의 사리사욕과.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 앞에 겸손하며.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삶을 살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를 존귀히 여기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를 존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리더십을 세우는 것은. 세컨드(second) 리더십이기에.
오늘 나의 삶이. 담임목사님의 리더십을 세워가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공동체가. 자기의 안녕과 평화만 생각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도 바울이 얘기했던 것처럼.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공동체가. 모두의 유익과 덕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것을 희생하고. 자기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 가운데.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싸움으로.
서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며. 서로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우리 공동체 가운데.
서로를 세우고. 서로를 존귀히 여기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 가리.
주님 우리 안에 함께 하시니. 형제 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네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내게 주신 우리 형제자매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의 것을 내려놓고. 자기의 것을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자비. 은혜와 평화 내려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주 안에 우린 하나)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여호수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06(월) 수 5:1-12 (0) | 2025.01.06 |
---|---|
2025.01.05(주일) 수 4:1-24 (0) | 2025.01.04 |
2025.01.04(토) 수 3:1-17 (0) | 2025.01.03 |
2025.01.03(금) 수 2:1-24 (0) | 2025.01.02 |
2025.01.01(수) 수 1:1-9 (0) | 2024.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