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2:11-14

내 평생에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살아가며.
내가 복음을 전한 대로. 나도 그에 맞는 열매를 맺는 것.
어쩌면 그게.
나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뭔지 아니?
그것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거리야.
그리고. <가슴>에서. <손과 발>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게 멀지"

그만큼. '말하는 대로, 가르친 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와 어려움이 있고.
높은 사회적 장벽과. 쉽사리 깨지지 않는 문화적 관성/습관도 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도 그랬다.
지난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분명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주께서 그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택하였다는 것을.
결정하고. 기뻐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문제가 터지니. 그들은 자기 몸 챙기기에만 바빴다.

실제로 그렇지 아니한가?

게바(베드로)가. 야고보에서 사람들이 몇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음식을 잘 먹다가.
왜 그들이 오니까. 자리를 피하고 도망친단 말인가.
예루살렘 교회 수장으로서. 예루살렘 교회가 판단하고 결정한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설파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게바는.
사람들이 무서워. 그 자리를 피하고 도망쳤다.
내가 여기 있다가는. 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비방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에.
얼른 그 자리를 일어나서. 피하고 도망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한다.
충분히 그럴만 하지 않겠는가.
베드로가 자리를 일어나서. 베드로가 먼저 도망치는데.
나라고 이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결국. 바나바까지 그들의 행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인 전도에 앞장 서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앞장 섰던 바나바.
그도 사람들의 위선과. 사람들의 얼룩에 물들게 된 것이다.


이에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엄히 꾸짖고 책망하게 되는데.
어쩌면.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무수히 많은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많은 말로 사람들을 교훈하였다.
시중에는. 정말 많은 기독교 도서가 출판되었고.
그 지식과 지혜를 모으면. 하늘 끝까지 닿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소화하고. 내 것으로 삼는 이는 드물다.
사랑에 관해. 무수히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거기에는 사랑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수많은 계획과. 효과적인 전략을 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에 참여하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논의가. 탁상공론에 그칠 때가 많은 것 같다.
하나님 나라를 입으로 세우고. 입으로 섬길 때도 많은 것 같고.
그렇게 우리의 영성은 점점 약해지고.
우리의 실력도 점차 약해질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전해야 하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믿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실제 우리 삶에.
있는 모습 그대로 구현하고.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되고.
그것을 행하는데. 일치하여야 한다.

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며.
말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용납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용납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 진실한 힘이 나타나고.
그래야 거기. 진실한 능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야 거기. 진실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고.
그래야 오늘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물들고.
그래야 오늘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그분의 은혜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말로' 하나님을 섬기고. '말로' 하나님을 전하는.
그런 위선적인 공동체. 그런 껍질/껍데기뿐인 공동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고.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엡 4:13)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엡 4:14-15).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소원한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마음다해 섬기며. 하나님을 마음다해 사랑하는.
온전한 공동체. 진리의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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