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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8.24 :: 2022.08.24(수) 삿 20:18-36

삿 20:18-36

'확신의 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지나친 확신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절대로. never. 진짜로!"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진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확신은. 우리에게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하고.
맹목적인 신앙/믿음은. 우리의 눈을 가려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을 헤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마음/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확신과. 그릇된 믿음 속에 놓여 있지 않은지.
함께 돌아보고.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르고 정결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갈 길만 걸어간다면.
그것은. 고집스럽고. 우둔한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싸움/시험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이스라엘 11지파가.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을 앞두고.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지파와 싸워야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라는 답을 주시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가?
이스라엘이 이겼던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박살나고. 오히려 베냐민 지파가 승리를 거뒀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 일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생각한 것과.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목놓아 울면서 따진다.
"하나님. 올라가도 된다면서요?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면서요?
근데. 이따구 결과를 주면 어떡합니까?
제가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습니까?"

이에. 하나님은. 다시 "올라가서 싸워라"고 말씀하신다.
근데 그 결과.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분명히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했는데.
왜 우리가 전쟁에 패하는 걸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확신의 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8절과. 사사기 1장 1-2절을 비교하면.
두 본문은 아주 비슷하면서. 동시에 작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사사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본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 싸워야 하겠습니까?"
근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뭐냐면?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라는 답변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과 모든 상황/정황/구조가 똑같다.

근데. 사사기 1장과 오늘 본문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사사기 1장 2절 부분이다.
실제로 사사기 1장 2절을 보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라는 말씀 뒤에.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었다"라는 말씀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말씀이 없다.
단지. 그냥. 하나님이.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러라"라는 말씀만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지레 짐작하고. 자기들의 길을 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고만 했지.
내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줄 것이라고 말을 한 거는 아닌데…"

결국. 이스라엘은. 지레 짐작하고.
자기 경험과 자기 확신 속에. 사로 잡혀서.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우리가 다시 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과 싸워도 되겠습니까?"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어보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올라가서 싸워라!"

근데. 여기서도. 이스라엘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이. "올라가서 싸워라!"라는 얘기까지만 했는데.
그들은. 황급히/성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왜냐면? 그들 마음엔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당장 올라가서. 저놈들을 박살내고 싶고.
내 마음에 생각/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답을 물어보는 것은.
그냥 형식적인 절차뿐이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용기를 내어서.
첫날 대열을 갖추었던 곳으로 가서.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23절)"

하나님이 그들 마음에 확신을 주고. 약속을 주고. 소망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가 있으니.
왜곡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남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믿었던 전쟁에서. 또 다시 깨지고 말았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그제서야 뒤늦게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 28절엔.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또 다시 올라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겠습니까?"

근데. 이번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듣는다.
자기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들의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이 그제서야 이렇게 말씀하신다.
"올라가거라. 내일은 틀림없이.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


그런 측면에서. 이 아침.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우리는.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싶은대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 스스로의 경험과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싶은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 뜻을 비우고. 내 생각을 비우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인데.
오늘 우리는. 내 생각을 계속 고집하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실수/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듣는 마음/유순한 마음을 주셔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을 수 있는 공동체 되면 좋겠고.
나의 생각과 고집을. 하나님 앞에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며. 돌이킬 줄 아는.
그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온전히 흘러넘치면 좋겠다.

그래서. '자기 확신의 죄'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그런 우리가 되지 않으면 좋겠고.
나의 뜻과 나의 원함이 아니라.
주의 뜻과. 주의 원함이 드러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그 주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히 실현되고. 나타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 말씀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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