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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9 :: 2025.03.20(목) 눅 13:1-21
눅 13:1-21
이사야 5장을 보면. <포도원에 관한 노래>가 나온다.
주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극상품 포도 열매> 맺기를 바라시며.
땅을 고르고. 망대를 치며. 물을 대며. 거름을 주셨는데.
이스라엘이 정작 맺은 열매는.. <극상품 포도열매>가 아닌. <들포도 열매> 뿐이었다.
"들포도"라고 하면. 길에서 나는. 야생 포도/노지 포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맛이 나는 포도. 썩은 포도"를 가리키는데.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근심하고 또 슬퍼하셨다.
지난 시간 기다리며.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좋은 열매"가 아닌. "썩은 열매"로 주인에게 엿(?)을 먹이니.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배은망덕한 짓인가.
그래서 이사야 5장을 보면.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이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사 5:4-6)"
그만큼 우리 주님의 마음은. 시커멓게 멍들고.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선한 마음과 선한 뜻을 품고 계셨는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니. 우리 주님이 탄식하시고. 슬퍼하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을 다시 돌이키셨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은 마음이. 그의 마음을 스스로 변화시키신 것인데.
호세아 선지자는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호세아 11장 8절을 보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여기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켰다"는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마음을 돌이키고.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주님의 인애/주님의 헤세드라 부른다.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내세울 것 없는 자에게.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도 그러하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7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그의 임박한 진노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 여전히 돌이키지 아니하자.
주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임박한 심판/경고의 말씀을 하시는데.
이때 포도원지기가 이렇게 말한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8절)"
이것은 포도원지기가 그간 열심히 일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포도원지기는. 지금까지 열심으로/사랑으로 이 포도원을 가꿔왔다.
그래서 포도원지기는.
누구보다 애타는 마음으로. 이 포도원에 열매 맺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오늘 주인 앞에. 다시 한번 기회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화과 나무를 봤을 때는. 정말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고.
지금이라도 당장 이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겠지만.
나를 봐서라도.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이후의 결과를. <열린 결말>로 끝맺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주인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면. 무화과 나무는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포도원지기는 믿을만 하기 때문이다.
무화과 나무는 그동안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아무런 소출도 얻지 못하였지만.
포도원지기는 그동안 신실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소출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포도원지기가 바로 우리 주님인데.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쉼 없이 일하고 계신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17절까지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 10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귓니 들려. 앓으며 꼬부라진 한 여자를.
우리 주님이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이 낫고. 회복되는데 있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셨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당신을 욕하고. 사람들이 당신을 저주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셨고.
이 일을 통해. 당신의 백성이 나음을 입고. 자유를 얻기 원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랜 세월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나음을 입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도움을 줄 수 없는 100가지 이유보다.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도움을 줘야하는 1가지 이유가 앞섰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 열매 맺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면.
그것을 폐기 처분하고. 없애버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다시 한번 무화과 나무 가운데.
꽃이 피고 열매맺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 땅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정죄하기 이전에.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의 백성을 건지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며.
오늘도 주의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고.
당신께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3절, 5절)"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께 돌이키며. 주께 나아가는. 그런 복된 하루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시고.
오늘도 우리 가운데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 앞에.
우리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져버리는.
그런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기쁨으로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주께서 우리 가운데.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데.
오늘 우리가 주의 마음을 근심케 하며. 주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그런 우리 삶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것처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매일 피차 주님 앞에 돌아가며.
매일 피차 서로 권면하며. 누구드지 죄의 유혹 앞에 완고해지지 않게 되는(히 3:13)"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영광을 돌리세. 우리 하나님께. 존귀와 위엄과 능력과 아름다움.
만방의 모든 신은 헛된 우상이니. 오직 하늘의 하나님. 그 영광 찬양해.
주님의 영광. 모든 나라 위에. 주님의 영광. 온 세계 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영광 찬양해.
우리 주님 나라 영원하리라. 우리 주님 뜻은 이뤄지리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께 돌이키며. 주께 전심으로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영광을 돌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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