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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0 :: 2025.03.21(금) 눅 13:22-35
눅 13:22-35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 사상"에 빠져 있었다.
주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을 "하대"하곤 했었는데.
그 기록이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였을 때.
"어찌하여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방인과 피를 섞은. 더러운 민족/혐오의 대상이었으며.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를 향해. "개"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사람들을 부르던. 표현/상징적인 말이었는데.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 우월주의 사상에 크게 심취해 있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택함/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백성이며.
"오늘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자기 기만과 자기 의로움과.
자기 생각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며. 그를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주님이 이것에 대해. 크게/엄히 경고하신다.
실제로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집 주인이 문을 닫고 난 다음에.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소연하는 자들이 나오는데.
재밌는 것은. 이들이.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라고 하면서. 황급히/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우리 주님은.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충격적인 말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자녀라. 생각하며.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모른다" 하시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겠는가.
그래서 이들이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한 주는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쳤나이다(26절)"라고 하면서.
주님과 우리의 상관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데.
이 얘기에 대해 우리 주님이. 결단코/분명히 선언한다.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으니. 행악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이.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저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아모스 선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리라(암 5:21)"고 하신 것은.
그들의 삶에. <예배의 형식/절차>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예배의 진성/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수많은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인애가 없었기 때문에.
주께서 그것을 멸시하시며. 거부하시고. 또 외면하시게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주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지만.
너희는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8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님(롬 2:28)"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육체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는 것이니.
하나님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돌이키고. 주께 나아가는 자들이(롬 2:29)"
하나님께 칭찬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 구속 받을 것임을.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리(24절).
너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제임스 패커가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에 대해서>는 수많은 얘기를 하고. 수많은 풍월을 읋지만.
정작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 세대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신변잡기와 풍월을 읊는 것은 참 잘 하지만.
정작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분과 아무런 사귐도 없으면.
오늘 우리 삶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주변인/잡상인>에 불과할 것인데…
오늘 우리는 <주변인/잡상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을 누리며. 그분 안에서 풍성한 삶/유익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바라기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주께서 오늘도 우리를 품기 위해.
우리에게 팔을 벌리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손을 내미시는데.
그 손을 뿌리치고. 그 손을 외면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며.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그런 복된 관계/진실한 관계로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주님을 맴돌며. 우리 주님을 기웃기웃거리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주님 안에 거하며. 우리 주님께 골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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