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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08 :: 2025.03.09(주일) 눅 9:51-62
눅 9:51-62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기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도. 삶의 방식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과 종종 마찰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다.
사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내 얘기를 귀담아주고. 내 생각에 지지해주는 사람을 원하지만.
우리 곁에는 늘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내 생각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우리 걸음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때론 주눅들고.
때론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
아니 어쩌면. 우리가 평생 겪게 될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오늘 본문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방해하고. 핍박하기 시작한다.
쉽게 얘기하면. 재를 뿌리고 소금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입장에선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래서 제자들이 대신 감정이입해서.
"예수님.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저 사람들을 쓸어버릴까요?(54)"라고 하는데.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꾸짖고 계신다.
"도대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혼내고 계신 것이다.
근데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앞의 이야기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빌러. 귀신을 내쫓고 주를 따르지 않는다(49절)"고.
요한이 고발하는데.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이 '냅두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찼을 것이다.
"아니 지금.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고.
우리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냅두라고요?"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께 화를 내고. 덤볐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에 대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50절)"고 하시니.
제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속이 상하고 답답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반대하는 사람들도 뭐라하지 말라 그러고…
반대하진 않지만. 우리를 따르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빌러 귀신을 내어쫗는 사람들도. 뭐라 하지 말라 그러고…
그럼 우린 호군가?"
제자들 입장에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에 대해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냅두라>고 말이다.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내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싸워이기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 나라"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합과 이세벨이 반면교사로 좋은 예이다.
나봇의 포도원이 마음에 들어. 아합이 그 포도원을 갖고 싶어 할 때에.
나봇이 거절하자. 아합은 속이 상해서 집에 들어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이세벨이 세차게 야단을 친다.
"사내 자슥. 뭘 그딴 걸 갖고 울고 있냐"며. 당장 기를 펴고. 당장 니 힘을 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세벨은. 자신의 힘을 빌려.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죽이고. 강제로 그의 땅을 빼앗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악한 일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힘은. '나를 세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뭐라 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이름을 이용해서. 귀신을 내어쫓지만.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뭐라 하지 않으시는데…
오늘 이 모습이. 우리 주님이 이 땅을 살아간. 삶의 모습이다.
주변 사람들의 충/조/평/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이렇쿵 저렇쿵 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마음을 다치지 아니하고.
오직 내게 주어진 길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성실히 걸어가는 것.
그렇게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셨고.
그렇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충실히 걸어가셨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당부하신다.
'사람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여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구하여라.
'사람들에게 주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주목하여라.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마음 판에 굳게 새기는.
그런 복된 하루. 그런 복된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얘기에 따라. 오늘 우리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되는.
그런 하루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람들의 얘기에 따라. 오늘 우리 마음이 낙심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부르신. 그 음성과 그 뜻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전진을 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의의 열매를 맺고. 승리의 열매를 맺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라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우리 주님의 발걸음만 따라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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