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2'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5.03.02 :: 2025.03.03(월) 눅 8:26-39

눅 8:26-39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목적/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사도 바울의 삶이 그렇다.
전에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그를 비방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는데.
다메섹 도상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노래하는 것"으로 인생의 목적을 삼았다.

전에는 '율법의 의로. 자기 의'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
자기를 향해.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런 내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은혜 중에 은혜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만 그렇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 한 사람도 바뀌지 않은 사람이 없었었고.
그렇기에. 성경의 역사는. <회심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를 위해>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살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라사 광인'의 모습이 그렇다.

실제로 오늘 본문. 27절부터 29절까지의 기록을 보면.
그는 정말 하나도 성치 않은. 광인 그 자체에 불과했다.

옷을 입지 아니하고. 집에 거하지 아니하며.
무덤 사이에서 먹고 자며. 때로는 자신의 몸을 자해하고 학대하며.
그렇게 오랜 세월. 인생의 목적도 삶의 의미도 없이.
귀신 들린 체 살아오고 있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일단 옷을 입게 되었고.
정신도 온전해져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35절).
그전에는 너무 흉악하고. 고약해서.
사람들이 그를 통제할 수도 없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조용히/얌전히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35절).

이 일이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웠던지.
사람들이 그 일을 바라보고. "예수께 떠나가기를 간구"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예수님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 한 사람을 고치기 위해.
그 마을에 있던 수많은 돼지떼가 학살을 당했는데.
이 사람이 여기 있다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도저히 상상/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시는데.
이에 주님이.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한 가지 약속/명령을 내리신다.
그것은 "나를 따라오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리고 증거하라(38-39절)"는 것이다.

이에 귀신 들렸던 사람은. 그 길로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느지.
온 성내에 알리고. 전파하기 시작하는데.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자기 눈 앞에. 살아있는 증거/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과거를 우리가 잘 아는데.
그가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온전한 모습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놀라운 일. 신비한 간증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한 미치광이/광인>의 삶을 살다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증인/한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의 변화. 온전한 회심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 앞에 의탁하며.
함께 기도하게 된다.

내가 공동체를 섬기면서. 바라고 소망하는 한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는 역사>가 있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무관한/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분과 하나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과 소망이 없이. 허무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인생의 목적과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며.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절망과 탄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소망을 발견하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의 노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무의 인생>이 아니라. <유의 인생>을 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유한한 인생>이 아니라. <무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이 기도하며. 또 간구하게 된다.

"주님.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소망과 목적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나를 위해/나를 향해 살아가던. 인생의 목적지와 향방을 벗어나게 해 주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우리 인생이.
우리 눈 앞에 있는 인생의 목적지와. 인간의 안녕과 번영에 눈을 들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주어져 있는 복과 상을 위해서.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향해 몸부림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에 대한. 현현과 살아있는 증거들이 넘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교보재. 살아있는 역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feat. 십자가에서)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3.05(수) 눅 9:1-17  (0) 2025.03.04
2025.03.04(화) 눅 8:40-56  (0) 2025.03.04
2025.03.02(주일) 눅 8:16-25  (0) 2025.03.01
2025.03.01(토) 눅 8:1-15  (0) 2025.02.28
2025.02.28(금) 눅 7:36-50  (0) 2025.02.27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