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5.03.06 :: 2025.03.07(금) 눅 9:28-36

눅 9:28-36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처음으로 말씀하신 후.
주님은 당신의 제자 3명을 데리고. 한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산의 이름은. 우리가 흔히 '변화산'이라 부르는데.
공식 명칭은 '다볼 산'으로 추정된다.
갈릴리 남서쪽에 위치한 다볼산은 해발 580m 정도의 높은 산인데.
우리 주님은 이곳에서. 당신의 삶과 사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다.

이제 곧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전에 기도하고. 마음을 추스림으로.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역/당신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말하는데.
이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주님의 몸이. 영광스럽게 변화된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고 말하는데…

마가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전언한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막 9:3)"
얼마나 새하얗고 빛이 났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아마 그것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하고 영광의 빛으로. 가득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삽시다"라고 말하는데.
이에 우리 주님이. 오늘 우리의 부르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부르심은. 여기 '변화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여기>서 하나님을 누리고. <여기서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뵈옵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내게 주어진 곳>
내게 주어진 걸음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많은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살아간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며.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하신 사도 바울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부정한 것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하고.
불의한 자들과 친구가 되지도 않고. 어떤 모양이라도 악을 버리고.
거룩한 삶/정결한 삶을 사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방법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세상과 등지는 삶. out of the world"가 아니라.
"into the world.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분법적인 생각/사고'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균형 잡힌 삶/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을 따르지 않는. 구별된 삶이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어울리셨지만.
그들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길을 그들 가운데 가르쳤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앞에 그래야 한다.

오늘 우리 인생이.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세상 가운데 물드는" 그런 삶이 아니라.
오늘 우리 인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그런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경계의 말씀과 함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경건. 거룩한 경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참된 경건/거룩한 경건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며.

오늘 우리 인생에. 세상에 물들고. 세상에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예수의 복음으로 전염시킬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뿌리가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세상의 풍파와 세상의 거친 파도 앞에서. 오늘 우리 인생이 흔들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며.

날이 갈수록. 더 악해지고 더 교묘해지는 세상 앞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한 것인디. 더 깨닫고 분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것 조차 없는데.
평안히 가서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먹으라 말만 하고.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없는 경건은.
어려움 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를 지켜 깨끗케 하는 것이라.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것 조차 없는데.
평안히 가서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먹으라 말만 하고.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않으리라. 주님 말씀하시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없는 경건은.
어려움 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를 지켜 깨끗케 하는 것이라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성령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계시도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정결한 주의 백성. 진실한 주의 백성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뒤집어 엎겠다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야욕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 주시는 힘과 주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 주님을 따라가며. 우리 주님과 더불어 사는.
그런 주의 백성.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흠 없는 경건)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3.09(주일) 눅 9:51-62  (0) 2025.03.08
2025.03.08(토) 눅 9:37-50  (0) 2025.03.07
2025.03.06(목) 눅 9:18-27  (0) 2025.03.05
2025.03.05(수) 눅 9:1-17  (0) 2025.03.04
2025.03.04(화) 눅 8:40-56  (0) 2025.03.04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