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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1 :: 2025.03.12(수) 눅 11:-13
눅 11:1-13
기도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가리켜. '호흡'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기도를 가리켜. '사귐'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가리켜. '소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도를 가리켜.
'하나님 안에 내주하심. 그분 안에 머무름'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기도에 대한. 나름 좋은 정의인데.
나는 오늘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도는 항복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인간은 웬만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사기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기한이 몇 년이냐면? 10년. 20년. 40년 만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적들의 침입이 아무리 거세고. 오늘 우리의 살림살이가 아무리 망가졌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웬만한 주님의 이름을 찾지 않는다.
어쩜 그리 뚝심이 좋은지 모른다.
도대체 무슨 깡다구로. 그렇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움/씨름을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 앞에 버팅기고 버팅기다가.
도저히 내 힘으로 살 수 없을 때가 되면. 그제서야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과 고된 짐을 맡기기를 계속 반복하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학살하기 위한.
'유아 살해 명령'까지 내리게 되는데.
이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이 죽고. 도저히 못 견딜 때가 될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본성/속성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정말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 같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리기를.
정말 괴로워하고. 또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기도를 가리켜. <항복>이라 말하고 싶은데…
그것은 오늘 우리가.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고. 도저히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가리켜. <항복>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부터 4절까지를 보면.
<기도의 내용/기도의 제목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예수님은 주기도문에 관한 말씀을 가르치신 다음에.
바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라고 하는데…
여기 보면. 6절 마지막에.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 이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늘 우리 곁에 많은 친구들이 찾아오고.
오늘 우리 곁에. 우리가 돌보고 먹여야 할 식솔들이 있으며.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등.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몰려오게 된다.
그래서 그때마다. 우리는 여러 모자를 쓰게 되는데.
이 상황 속에서. 우리의 힘과 에너지는. 바닥이 나고 동이나기 마련이다.
먹이고 싶어도. 먹일 수 있는 떡이 없으며.
나눠주고 싶어도. 나눠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하다.
어떤 일을 지혜롭게. 선명하게 잘 하고 싶어도.
그것을 감당할 만한 힘과 지혜가 내게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발을 동동구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근데.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니가 먹일 것이 없거든. 먹을 것이 풍성한 우리 주님을 찾아가서.
그분께 간구하고. 그분께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너무 염치 없는 것 아니냐?"고. 민망해하고. 쭈뼛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상시에 주님을 찾고. 주님을 구하지는 않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등진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책임지고 돌봐야 할 식구가 있다면.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오늘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8절과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고 말씀하시는데…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
이것이 기도의 첫 출발/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하는데…
<누가> 구하며. <누가> 찾으며. <누가> 문을 두드리겠는가?
그것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며. 그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내게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앞에 두 손 두 발 들고 나오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도움을 청하며. 겸손히 엎드리게 되며.
오늘 우리에게 도저히 피할 길이 없고. 살 구멍이 없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겸손히 무릎꿇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주님의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무작정 떼를 쓰고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나님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주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음"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겸허히 고백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꾸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연약함과 나의 부족함을 겸손히 고하여야 할 것이며.
오늘 우리 인생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겸손히 무릎 꿇게 될 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누리며.
그분 안에서 온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누리며. 주님 앞에 엎드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아둥바둥 살아가는 그런 삶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께 안기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온 땅의 주인 되신 주님이. 내 이름 아시며. 상한 맘 돌보네.
어둠을 밝히시는 새벽 별. 방황하는 내 맘. 주의 길 비추시네.
나로 인함이 아닌. 주가 행하신 일로.
나의 행함이 아닌. 오직 주로 인하여.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네.
바다에 이는 파도. 안개와 같지만.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나 오직 주의 것. 나 오직 주의 것. 나 오직 주의 것"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그런 복된 하루. 그런 복된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온 땅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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