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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3.12 :: 2025.03.13(목) 눅 11:14-26

눅 11:14-26

 

오늘 본문을 보면.

말 못하게 하는 귀신 때문에. 고생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하였고.

마태복음에서는 그 사람을 가리켜. 눈까지 멀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지.

우리는 손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신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고쳐주셨는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기록과 함께.

이 일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만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뿐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각각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1) 실제로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 어떤 사람은 이 일을 보고. 예수를 조롱하고 비방하는 사람들도 있다.

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다른 악한 귀신을 내어쫓는다고 말하고.

3)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일로는 부족하다고. 다른 기적을 행하고. 다른 표적을 행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16절을 보면.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예수님을 둘러싼. 서로 다른 3가지 반응이었다.

 

참 재밌는 일이다.

어쩜 이들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같이 목격했음에 불구하고.

왜 이렇게 서로 다른/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그들 안에 있는 영적 무지와 어두움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보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듣길 들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 어두움과 무지 속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과 이사를 보고도. 그를 믿지 못하고. 그를 따르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잠들었다'는 표현보다는. '억지로 잠자고 있다'는 말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듣지 않기로. 작정하고 서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설득하고. 논리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말 소 귀에 경 읽기와 같은 것이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오늘 이 모습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과 현현을 경험하고서도.

의도적으로/억지로 예수님을 몰아내는 사람들이 있고.

2) 예수님께서 이번 한번만 나를 도와주신다면.

이제는 내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철떡같이 약속해 놓고서도.

언제든지 돌아서고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

3)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약속/증거를 보이라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고.

4) 정말 소수의 사람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 들린 자"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 이 세대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이심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투쟁하며. 불순종하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심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자기 주장을 하며. 자기 생각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그들도. "예수가 주이심을 말 못하게 하는. 귀신 들린 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근신하여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걸려넘어지고 쓰러지기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한 번 이뤄지고.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 <평생> 이뤄져야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은. 한 번의 고백으로.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 <평생/영원토록/종일토록> 고백되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24-26절)"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는데.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경각심을 함께 가지게 한다.

오늘 이 땅의 권세 잡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방해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철두철미하게 싸우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영적 어두움과 무지 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도. 일부러 그것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완악함과 완고함 가운데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은헤를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이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며. 그를 조롱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주인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널리 전하고.
차가운 내 맘 녹여주사. 사랑을 알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입을 열어주소서. 성령이여"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시고. 우리의 입을 열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어두운 내 눈 밝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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