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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8 :: 2025.03.19(수) 눅 12:49-59
눅 12:49-59
오늘 본문 49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소개한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하리요"
이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구원자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함께 가리키는 것이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이 "물"로 이 땅을 심판하셨다면.
우리 주님의 때에는. "불"로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날이 이제 곧 임하고. 속히 올 것임을 함께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말라기 4장 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날에 우리에게 주어진 반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거나.
그 둘 중에 하나를 취하는 것 뿐이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주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거룩의 불>로 임하게 될 것이며.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주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심판하시며. 우리를 삼키시는.
<심판의 불>로 임하게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은.
"심판의 날에 대한 우리 주님의 경고"의 말씀으로.
우리는 본문을 해석하여야 한다.
1) 그래서 오늘 본문 51절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51절)"라고 하는데.
이것은 오늘 우리의 구원자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이 땅 가운데. 진리의 가르침을 희석시키며.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벗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하나님의 가르침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포용"이 아니라.
"진리의 터 위에서. 진리의 말씀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오늘 우리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때".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며. 주의 나라가 온전케 되기 때문이다.
2) "때를 분간하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날씨의 변화를 보면서. 앞으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데.
왜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 땅의 변화를 보면서도. 아무런 예측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분간도 하지 못하고 있냐며.
우리 주님이 한탄하고. 우리 주님이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3) 그렇기에 이제 곧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죽으시며.
'소멸하시는 불'로 '심판케 하시는 분'으로서. 이 땅 가운데 임하게 되실 터인데.
그전에 우리가. 회개하고. 주께 돌이키기를. 주님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58절을 보면.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무조건적인 화해와. 하나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진리의 터 위에 바르게 서고.
하나님을 믿고. 회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이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옥에 가두실 것이며.
그래서 오늘 본문 59절 말씀처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너희가 이와 같은 화를 당하기 전에.
분명히 돌이키고. 분명히 나아올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불로> 이 땅을 심판하실 터인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임할 <불의 심판>이. 그 성격과 뜻을 완전히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되돌아 본다.
오늘 우리는 약속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듣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생각하며.
머뭇머뭇거리며. 아장아장거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롯의 사위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가?
진중하고 진실한 반응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웃고 넘기며. 계속 떠들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라(히 12:29)"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따라.
두려움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기쁨과 소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참된 구원의 길로(히 10:39)"로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히 10:38)"고 고백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이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세상은 변해가고. 소망은 힘을 잃어도. 변함없이 붙드시는 그 구원의 손길.
폭풍이 몰려와도. 두려움 물러가네. 우릴 위해 싸우시는 그 손을 의지해.
이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이 세상 어디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바래 왔고. 꿈꾸어 왔던 미래가. 그 한없는 사랑 안에서 열리고 있네.
이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과 싸우고. 주님을 대적하는. 그런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님으로 이기며. 주님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이땅에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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